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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가(7) 노자와 상선약수_3회

빈자무적 2025. 3. 7. 10:07

- '노자, 그 생각의 숲으로'

3회에 걸쳐 올리는 노자에 관한 내용은 국립청도숲체원 2차교원직무연수 때의 강의자료임을 밝힙니다. 이 내용들은 창의적 저작이 아니라 오직 강의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여러 학자들의 해석들을 종합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상당 부분 노자에 관한 해석을 인용한 부분들이 많으며, 일일이 주석을 명기하지 않고 본 문서의 말미에 참고한 서적을 밝혀두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Ⅰ. 노자의 서(書)와 삶
Ⅱ. ‘노자’에 담겨 있는 주요 사상
Ⅲ. 마치면서

 

 

. 마치면서

 

‘노자’ 서(書)에는 매우 함축적이고 역설적으로 표현되는 글이 많다. 그런 만큼 그에 대한 해석과 관점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제껏 많은 사람이 왕필의 주석본을 읽고, 그 책에 의거하여 노자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 이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도가도 비상도’일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도가 사상의 가장 크고 본질적인 원리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애써 외면하고 특정한 구절들에 집착하여 생각한 결과 노자는 신비주의, 형이상학적 담론에 그치게 하였다. 유학자 박세당은 노자를 개인적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강서(講書)로 보았다. 전통적 주류 해석은 <노자>는 형이상학적 우주론이나 개인의 안심도락(安心道樂)의 서(書)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무위(無爲)’를 개인 수련이나 자연주의 회귀로 보아 온 것은 왕필의 주석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만약 우리에게 한비자의 <해로>나 <유로>만 통행본으로 읽혀졌다면 ‘노자’는 병법서가 되었을 것이다.

전통적 <노자> 해석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최근 발견된 백서본과 곽점초묘 죽간본(초간본)은 전통적 왕필 주석에 의존하는 관행에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곧 <노자>가 형이상학적 담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 준 때문이다. 백서본은 덕경이 우선이고 도경이 나중에 나오게 서술되었다. 곽점본에는 기존의 반(反)유가사상에서 벗어나 도가와 유가 사상이 상보적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할 때는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삼단논법은 대전제-소전제-결론의 틀을 가진다. 대전제에 해당하는 도(道)의 관념은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원리이다. 노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대전제보다 결론이다. 그렇다면 ‘도가도 비상도’로 시작하는 도경(道經)은 대전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노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형이상학적 우주론이 아니라, 그것에 의존하여 인간의 삶과 윤리, 정치사상의 길을 제시하는 데 있었다고 본다.

덕경(德經)은 그의 통치 사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는 교육서이다. 결론에 해당할 수 있는 왕필본 67장에는 아주 중요한 말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만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삼보(三寶)를 통치의 미덕으로 제공하였다. 삼보란 세 가지 보물인데, 그것은 곧 자애(慈),와 검약(檢)과 불감(不敢=겸허한 자세)를 뜻한다. 이는 곧 노자가 바라는 도의 자연스러움에 의지하여 겸허하고 검소하며 자비로운 태도를 지향하라는 역설(逆說)을 통해 통치사상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짓과 다툼, 억지, 위세, 교만, 이기심, 복잡함을 버리고 소박한 지혜를 갖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지만, 특히 통치자가 가져야 할 덕목들이다. 그래서 억지로 함이 없으면서 다스리는 것(無爲之治)은 한비자의 통치술인 ‘이병(二柄)의 치(治)’ 곧 형치(刑治)와 덕치(德治)에도 원용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하여간 백서본 이전의 <노자> 서(書)는 개인적으로는 처세의 역할을, 국가로서는 치리(治理)의 역할을 해 왔다면 왕필본 이후의 책은 탈속과 개인 자유 추구의 성향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에서 우리는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노자의 교훈을 새기게 된다. 김용옥 교수는 ‘폭력의 반대가 논술’이라고 하였다. 폭력이나 설득은 모두 상대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전자는 위력으로, 후자는 언어로써 상대를 자기와 조화하는 방법이다. 세계의 석학 화이트헤드(1861-1947)는 “논리는 감동을 준다.”라고 하였다. 노자는 비어(非語)만을 결코 소통의 수단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도가도 비상도’에서 ‘가(可)’를 ‘언어로 말하여진’ 것으로 해석할 때부터 노자를 오해하기 시작한 부분이 있다. 노자가 윤희에게 5천여 자의 글을 남긴 것은 언어적 설득의 묘를 충분히 활용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의 가설을 말하지 않더라도. 인간 정신은 언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언어야말로 폭력 대신 서로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부쟁의 소통 수단이다. 노자는 무명을 유명의 준거(reference)로 삼은 것처럼 자연의 비어(非語)를 언어의 준거로 삼을 것이 아닐까. <노자>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개인의 안락하고 평온함을 추구하는 힐링 메서드(healing method) 정도로 생각하든 처세서(處世書)로 생각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칼과 위력과 폭력이 난무하던 혼란했던 시대에 개인적 탈속만이 노자가 바랐던 궁극적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참고한 책>

 

최재목 역주, ‘노자’, 을유문화사

황병국 옮김, '노자도덕경', 범우사

최진석 노자 강의, ‘생각하는 힘‘, 위즈덤하우스

소준섭 옮김, ‘도덕경’, 현대지성

강신주,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노자편)’, 오월의봄

강신주,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장자편)’, 오월의봄

김시천,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 책세상

김원중 옮김, ‘한비자’, 글항아리

조관희(장주 지음), ‘풀어 쓴 고전 4권 장자’, 청아출판사

사기열전 강독회(사마천 지음), ‘풀어 쓴 고전 9권(상)’, 청아출판사

박건영, 이원규(한비자), ‘풀어 쓴 고전 7권 한비자’, 청아출판사

김용옥 교수의 유투브 ‘노자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