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자, 그 생각의 숲으로'
3회에 걸쳐 올리는 노자에 관한 내용은 국립청도숲체원 2차교원직무연수 때의 강의자료임을 밝힙니다. 이 내용들은 창의적 저작이 아니라 오직 강의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여러 학자들의 해석들을 종합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상당 부분 노자에 관한 해석을 인용한 부분들이 많으며, 일일이 주석을 명기하지 않고 본 문서의 말미에 참고한 서적을 밝혀두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Ⅰ. 노자의 서(書)와 삶
Ⅱ. ‘노자’에 담겨 있는 주요 사상
Ⅲ. 마치면서
|
Ⅰ. 노자의 서(書)와 삶
‘노자(老子)’라는 인물은 그 생몰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가 살았던 시대는 공자 시대 전후(BC.579-BC.499)로 추정된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을 쓴 사람이다. 노자가 실존 인물인가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으나 그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근거가 없다. 다만 여러 기록 중에 그에 관해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신비적 서술들이 그의 실존에 의문을 품게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후세 사람들이 ‘노자’라는 인물에 대한 존숭의 채색을 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노자 사상과 그 사상이 담긴 책의 비조는 노담으로 실존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가 쓴 <노자>의 판본은 여러 가지이다. 위나라의 왕필(王弼, 226-249)이 주석을 단 왕필본, 한나라 은둔 선비였던 하상공(河上公)이 쓴 하상공본, 당나라 도사였던 부혁(555-639)이 제작한 부혁본 등이 있다. 왕필본은 현대까지 거의 모든 번역가나 독자들이 전범(典範)으로 여기는 텍스트이다. 왕필본과 더불어 하상공본과 부혁본은 주석본이다. 왕필의 주석이 철학적인 해석이라면, 한초 문제(BC.180-BC.157) 때의 하상공본이나 당초의 부혁본은 종교적 성격이 짙다. 하상공본은 시기상 왕필본보다 앞선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백서본과 죽간본이 최근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1973년 겨울 마왕퇴에서 발견된 백서본은 기존의 왕필본과 차이가 있다. 백서본은 기존에 알려진 왕필본과 달리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가 바뀌어 덕경이 앞에 오고, 도경이 뒤에 온다. 이렇게 보면 백서본은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德道經)’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백서본의 분량은 왕필본의 80% 정도가 된다. 왕필본과 백서본의 관점은 반(反)유가적 관점에서 태사담(주나라 태사 儋)의 ‘노자’를 근거로 개작한 것이라고 보이는데 둘의 사상적 차이가 적다. 하지만 1993년 곽점초묘에서 발굴된 초간본(죽간본)은 기존의 <노자> 연구에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는 차이들을 보여 주었다. 초간본은 한자 통일 이전의 가차자(假借字)로 기록되어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초간본의 분량은 왕필본의 40% 정도로 내용상 분량이 적으며 왕필본이나 백서본보다 상당히 함축적이다.
또한 한비가 쓴 《한비자》에는 노자와 <노자>에 관한 글로서 <해로(解老, 노자를 풀이한 글)>와 <유로(喩老, 노자를 비유한 글)>가 있다. 여기서 인물 노자(노담)와 책 <노자>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래에서 책 <노자>의 판본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판본
|
원본(노자의 언설)
|
초간본(죽간본/갑・을 구분)
|
백서본
(덕도경
/갑본・을본)
|
왕필본
(주석본, 도덕경)
|
저자
|
노담
|
미상/ 노담의 원본 ‘노자’를 개작한 것으로 추정
|
미상
|
왕필(위진시대 현학의 시조)
|
저작 시기
|
노자 생존시
|
춘추시대 말기, 전국시대 초기(BC.450년 경)로 추정
|
전한 초기 문제(BC.168년) 시기로 추정
|
후한말 위나라
(226-249) 시기로 추정
|
기타
|
원본, 또는 진본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상태이며, 어디에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한 판본임.
|
1993년 호북성 곽점촌묘에서 발굴됨. 대나무에 다른 제자백가의 글과 함께 기록.
⁕유가에 대해 관용적
⁕왕필본 분량의
40% 정도
|
1973년 12월 겨울 마왕퇴 무덤에서 발굴됨. 비단에 쓰였다고 백서(帛書本)이라고 함
⁕왕필본 분량의
80% 정도
|
현재까지 가장 많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판본으로 ‘통행본’.
⁕개인적, 형이상학적 성향
⁕유가에 대척적
|
간추려보면, 우리가 가장 많이 읽고 있던 왕필본은 가장 먼저 발견되었지만 가장 최근의 판본이며, 가장 원본에 가까운 판본은 초간본(죽간본)이고 이것이 가장 나중에 발견되었다.
현재 사람들에게 통행본으로 읽히는 《도덕경》은, 왕필이 주석을 단 상편 31장, 하편 44장으로 모두 8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요절한 천재 문인 왕필이, 태사담의 ‘노자’를 개작한 백서본을 가지고 당시 상황에 맞게 다시 개작하고 증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기에 나타난 노자열전]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나오는 <노자열전(老子列傳)>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노자는 초(楚)나라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李)씨이고 이름은 이(耳), 자를 담(聃)이라 하였다. 주나라(동주) 수장실(도서관)의 관리였다. 공자가 주나라로 찾아가 예(禮)에 대하여 물으니 노자가 이렇게 답하였다.
“그대가 말하는 옛날 사람은 이미 그 육신과 뼈가 썩어 없어져 버렸고 오직 말로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오. 또 군자라는 사람도 때를 잘 만나면 수레를 타고 다닐 수 있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쑥대밭을 걸어 다니게 되오. 나는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한 곳에 보관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물건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덕을 많이 쌓은 군자의 태도도 겉보기에는 어수룩하게 보인다.’라고 들었소. 그대는 교만함과 욕심을 버려야 하며, 잘난 체하거나 뽐내지 말아야 하며, 쾌락을 멀리하길 바라오. 그런 것들은 그대에게 무익한 것들이오. 내가 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오.”
노자와 헤어진 공자는 돌아가서 제자에게 노자에 대해 말했다.
“새는 날 수 있고 고기는 헤엄칠 수 있으며, 짐승은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달리는 놈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놈은 낚시로 잡으며 나는 놈을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용은 잡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노자를 보았는데 그는 마치 용과 같았다.”
공자가 보았을 때 노자는 상당히 신비한 존재로 여겨진 것 같으나 실제의 노자의 모습이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이 글로 인해 노자의 사상을 그저 자연을 벗하는 수양론이나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오해하게 할 수 있다.
또 《사기》 열전에 전해지는 내용에 따르면 《도덕경》을 쓴 사람은 노자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론도 적지 않다. 즉, 노자가 ‘도덕경’을 지었다는 설, ‘도덕경’을 지은 노자와 《사기》의 <노자열전> <공자세가>에 나오는 노자는 별개의 인물이라는 설, 주나라의 태사 담(儋, 태사담)이라는 설 등 다양하다.
노자는 도덕을 닦았는데, 그의 학문은 ‘스스로 재능을 숨겨 이름이 드러나지 않기’를 힘썼다. 오랫동안 주나라에 살았는데 주나라가 쇠퇴해지는 것을 보고 마침내 주나라를 떠나기로 하였다. 함곡관(函谷關)에 이르자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선생께서 이제 은둔하시려 하신다니 저를 위해서 가르침을 남겨 주시지요.”
하고 청했다. 그래서 노자가 상‧하편을 지어 도덕의 뜻을 말한 오천여 자를 남기고 함곡관을 나섰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 《사기》
[한비자에 나타난 노자 해석과 비유]
《한비자》는 법가 사상가인 한비(韓非)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한비자》에 나타난 노자에 대한 해석은 <해로(解老)>에 있는데, 노자의 사상에 대해 기술(주석)한 것으로서 가장 오래된 해석서이다. 노자는 무위자연의 치(治)를 강조하는 데 한비는 강력한 법치(法治)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통치관은 대척적이다. 그럼에도 한비는 그의 책에서 노자의 도(道)와 이(理)의 관계를 고찰했다. 두 번째 노자에 관한 서술로 <유로(喩老)>’가 있다. 유(喩)는 곧 ‘비유한다’는 뜻으로 이 편에서는 설화의 인용을 통해서 노자의 철학이나 정치사상을 이해하려고 했다. 법가사상이 노자의 사상과 대척적인 점을 고려하면 ‘한비자’ 중에서 이 두 편은 위작(僞作)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게 나온다. 그러나 ‘노자’에서 나타나 있으면서 많은 노자 연구자들이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군주의 덕과 도에 관한 교훈은 곧 노자의 사상의 궁극적 목적이 정치사상으로 귀결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일반인의 치유나 수양에 있다기보다 무위지치(無爲之治)를 통한 국가의 안정된 존속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보아 ‘노자’를 제왕학으로서 해석한 한비의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점도 있다. ‘해로’와 ‘유로’에 나타나 있는 노자에 대한 한비의 이해 방식의 예를 각각 하나씩 소개한다.
<덕이란 외부로부터 취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은 옷이 추위를 막을 수만 있으면 되고, 음식이 배고픔만을 해결해 준다면 걱정이 없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렇지 못하여 크게는 제후가 되고자 하고, 작게는 천금의 재산을 쌓아두려 하니 그들의 이익을 바라는 조바심은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다. 죄수가 요행으로 풀려나기도 하고, 사형의 죄에 해당하는데 사면되기도 한다면 만족할 줄을 모르는 인간의 근심은 영원히 해소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노자가 “화를 부르는 것 중에서 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라고 했다.
따라서 이익을 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심하면 근심이 쌓이고 근심이 있으면 병이 생긴다. 병이 나면 지혜가 쇠퇴하고 지혜가 쇠하면 사리를 헤아리는 표준을 잃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거망동하기 쉽고, 인하여 해악이 닥치니 여러 질병이 체내에서 뒤엉길 것이다. 질병이 몸 안에서 요동하니 고통을 느끼고, 화(禍)가 외부에서 핍박하니 정신적으로 괴로울 것이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괴로움이 뒤섞여 사람을 크게 상하게 할 것이다. 사람이 심하게 상하면 물러나 자신을 질책하게 된다. 즉 물러나 자신을 질책하는 것은 본래 이익을 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노자가 “질책받는 일 중에서 이익을 탐하여 자신을 책망하게 되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은 없다.”라고 했다.
도(道)란 만물이 생성하는 원리이며, 온갖 사물의 규율이 이에 의거해 움직이는 대원칙의 존재이다. 온갖 사물들 각각의 규율은 이(理)라고 한다. 이것은 모든 만물의 모양과 성질을 만들어 내며, 이러한 규율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곧 도이다. 그래서 “도는 모든 사물을 종합·정리하여 각각에 규율을 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만물은 각각의 규율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 각 규율이 서로 침범할 수 없으므로 종합 정리를 거쳐 만물의 규칙이 만들어졌다. 만물의 규칙이 모두 다르기는 하지만 도는 그 전부를 포괄한다.] -박건영, 이원규 옮김, 『한비자』, <해로>
<가죽이 아름다워 재앙을 불렀구나>
[천하가 평안할 때에는 긴급한 변란이 없으므로, 명령을 급히 송달해야 할 역마(驛馬)나 마차가 필요 없게 된다. 그래서 노자가 “급박하게 달리던 역마들이 농민들에게 돌아가 밭을 갈게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천하가 어지러워지면 사람마다 나라마다 서로 다투고 전쟁을 일으켜 단 몇 년도 끊일 때가 없다. 군인들이 입고 쓰는 갑옷과 투구에는 이〔蝨〕와 서캐가 자라고 야전에 나가 있는 군대의 막사에는 제비와 뭇새들이 둥지를 틀고 살 지경에 이르도록 고향으로 돌아갈 날은 기약이 없다. 그래서 노자가 “새끼를 밴 어미말조차 군마로 쓰이니 변경의 전장에서 새끼를 낳는다.”라고 하였다.
한 적인(狄人; 북쪽 오랑캐)이 큰 여우의 가죽과 검은 표범의 가죽을 진(晋) 문공(文公)에게 바쳤다. 진 문공은 이 진귀한 예물을 받으면서 말하기를 “훌륭한 가죽이로다! 가죽이 너무나 훌륭하기에 자신에게 화를 불러왔구나.”하고 탄식하였다.
또한 나라의 군주가 이름 때문에 재난을 당한 경우가 있는데 서(徐) 언왕(偃王)이 그러하였다. 서국(徐國)의 왕이 배를 타고 종주국까지 갈 수 있도록 진(陳)·채(蔡)를 잇는 수로를 만드는 중에 땅 속에서 붉은색의 활과 화살을 얻게 되었다. 왕은 이를 상서롭게 여겨 자칭 서 언왕이라 부르게 하였다. 서 언왕이 36개의 소국들을 정벌해 가자 주(周) 목왕(穆王)이 초(楚)에 명하여 서국을 정벌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서국의 왕은 백성들을 보호하고자 싸움을 포기하고 패배를 감수하였다. 이러한 고사를 배경으로 말한 것이다. 또 성읍(城邑)과 토지 때문에 재난을 당한 경우가 있는데, 우(虞)나라와 괵(虢)나라가 그러했다. 그래서 노자가 “사물에 욕심을 내는 것보다 더 큰 재난은 없다.”라고 하였다.] -박건영, 이원규 옮김, 『한비자』, <유로>
<다음 편에 계속>
'인문고전독서 > 동양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양사상가(7) 노자와 상선약수_3회 (4) | 2025.03.07 |
---|---|
동양사상가(6) 노자와 상선약수_2회 (0) | 2025.03.07 |
동양사상가 시리즈(4) 장주의 ‘장자’ (0) | 2025.03.07 |
동양 사상가 시리즈(3) 노자의 '도덕경' (0) | 2025.03.07 |
동양 사상가 시리즈(2) 맹자의 '맹자' (0) | 2025.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