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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섬세로부터 보편적 원리로 향하는 사랑- 모리 오가이의 '기러기'

빈자무적 2025. 3. 9. 20:31

개인의 섬세로부터 보편적 원리로 향하는 사랑. - 모리 오가이의 '기러기'
-류우현
* 밤에 깨서 폰으로 쓰다보니 오타도 많고 어색한 문장이 많았습니다. 독자님들의 양해를 바라며 일단 한 번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이 이야기는 ‘나’라는 주인공이 가미조(上條)라는 하숙집에 있을 때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나는 실제 주인공이 아니다. 하숙집 그곳에 생활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의대생들이었다. 하숙집에 함께 기거하다보면 특별히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을 보기 마련이다.  유능하게 보이는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돈도 있고, 사교성도 좋으며 자신감이 넘친다. 그런 사람은 이따금 방안에 술상을 벌여놓고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안주를 만들어달라고도 한다. 내가 알던 오카다는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유능한 사람이지만 앞서 말한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나보다 1학년 아래인 그는 조정선수로 몸도 좋고 성적도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는 저녁 식사 후에는 꼭 산책을 다녀오곤 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입버릇처럼 오카다를 닮으라는 식으로 그를 칭찬했다. 오카다는 저녁 식사 후에 10시까지 꼭 산책을 하곤 했다. 오카다의 산책 코스는 항상 정해져 있었다. 그는 한적한 무엔자카를 내려가 시노바즈 연못을 돌아 우에노 산으로 걸어간 다음 유명한 요릿집 마쓰겐이나 간나베 등지를 돌아 번잡한 나카초를 지난 신사 경내를 통과해서 음산한 카라타치데라 모퉁이를 돌아온다. 그 모퉁이를 통과할 때는 화려한 등불이 켜져 있는 여인들이 있는 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무엔자카를 내려가다보면 영주의 고택에 바느질집이 있었고, 그곳에는 여러 여자들이 바느질을 함께 배우고 있었다.

오카다가 평소에 좋아하던 작품 중에는 <소청천> 이 있었다. 이 책은 시에 뛰어난 미소년 소청이 귀공자의 사람을 받지만 첩의 시기로 18세에 죽는다는 이야기가 중요한 주제였다. 그는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지닌 여성상을 마음에 두었고, 소청의 여인 같은 여성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어떤 계기로 바느질집의 ‘창가의 여인’은 어떤 사채업자의 첩을 알게 되었다. 오카다가 산책하면서 무엔자카 밑으로 그 바느질집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 큰 소란이 일고 있어서 무슨 일인가 살펴 보았다. 바느질집에 여인들이 새를 키우고 있었는데 새장에 구렁이가 머리를 집어넣고 있었다. 여자들은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오카다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이미 구렁이가 한 마리의 새를 잡아먹고 있었다. 오카다는 이 뱀을 막대기로 떨어냈다. 오카다와 ‘창가의 여인’의 인연은 뱀을 퇴치하면서 이어지게 된다.

그 여인의 이름은 오다마였다. 오카다에게 오다마에게서 아름답고 사랑스런 소청의 여성성을 느꼈다. 오다마와 말을 나눈 오카다는 자신의 마음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오카다의 절제심과 달리 오다마의 마음은 든든하면서 충실하게 보이는 오카다에게 깊이 쏠렸다. 그녀는 어떻게든 뱀 사건을 계기로 오카다를 가까이하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여자로서 가벼워 보일까봐 감히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여기서 '나'는 어떤 상품을 두고 여자가 갖고 싶은 욕망과 그것을 실제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하나가 될 때 희미하고 달콤한 애상적 정서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있지만 소심한 그녀는 오늘도 오카다가 그리고 지나가지 않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마음을 들키게 될까봐 문을 활짝 열어놓고 보지 못하고 청소하는 척하기만 했다. 여기서 주인공인 '나'도 오카다처럼 아름다운 여인 오다마의 사랑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 같은 여인의 유혹에 몸을 던지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보면 오카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느 날 하숙집에서 저녁을 먹고서 오카다와 함께 산책을 했다. 무엔자카를 지나면서 아름다운 오다마를 보았다. 주인공 '내'가 오카다를 팔꿈치로 슬쩍 쳤다. ‘창가의 여인’ 오다마는 넋을 잃은 듯 오카다의 얼굴을 좇았다. 두 사람은 모른 척 연못을 지나왔지만 가슴은 요동치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시들고 연못 주위로 가을이 내려 앉고 있었다. 마침 색이 바래고 시든 갈대들이 있는 쓸쓸한 연못가에 어떤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유도에 빠져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이시하라라는 하숙생의 실루엣이었다. 그가 말라버린 갈대가 무성한 연못 가운데 십여 마리의 기러기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시하라가 오카다를 보면서 저기까지 돌멩이가 닿을까? 라고 물었다.
오카다는 기러기들에게 동정심이 일었고 기러기에게 돌을 던진다는 생각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돌을 던져 기러기들을 도망가게 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가 멀리 돌멩이를 던졌는데 휭하고 날아가서 오히려 기러기에 정통으로 맞춰버렸다. 기러기는 움직이지 않고 몸이 수그려졌다.

이날 세 사람은 하숙집 식사 때를 이미 놓쳤으므로 국수집을 찾아가서 메밀국수를 함께 먹었다. 이때까지 국수만 먹으며 조용히 있던 오카다가 자기가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됐다고 갑자기 말을 꺼냈다. 미리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꺼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은 이시하라의 집으로 가서 자기로 했다. 그날 그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기러기를 옷 속에 감추어 이시하라의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오카가다 “불행한 기러기도 있군.”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나는 창가의 그 여자를 생각했다. 그들은 이시하라의 집에서 기러기를 안주삼아 늦게까지 술을 먹었다. 그들은 너무 지쳐서 인사도 못하고 각자 하숙집으로 헤어져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식사 때 보니 이미 오카다는 떠나고 없었다. 기러기에 대한 연민과 ‘창가의 여인’에 대한 애상한 마음이 겹쳐졌다. 나는 그게 35년 전의 일이란 것을 깨우친다. 불쌍한 기러기와 같은 '창가의 여인'.

모리 오가이의 '기러기'는 일본 문학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여겨지는 작품으로, 작가의 독특한 문학적 세계와 시대적 맥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오가이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사회적 갈등을 섬세하게 탐구했다. '기러기'는 남녀 사이의 성적인 사랑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도쿄의 의대생으로, 그의 내면세계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로 가득하다. 작가 모리 오가이는 이야기를 두 개의 평행선처럼 흘러가게 그렸다. 하나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억눌린 욕망을, 다른 하나는 사채업자의 첩과의 미묘한 사랑을 그려냈다. 그의 경험은 단순한 육체적 관계를 초월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 모리 오가이의 작품을 보면 한국문학과 다른 면이 있다. 한국소설이 주로 사회적 맥락과 집단적 경험을 다루는 반면, '기러기'는 개인의 내밀한 세계를 탐구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묘사를 깊이 있게 탐색했다. 두 나라의 문학적 경향의 차이를 모든 작품들의 성격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나라 문학은 문화적 다양성을 더욱 드러나게 한다. 작품에서 작가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 주제임을 보여 주었다. 이 작품 ‘기러기’에서 모리 오가이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각각의 주관적이고 섬세함이라는 개별성으로부터 인간성이라는 보편성으로 진행시켰다. 이 점에서 모리 오가이의 문학적 독특성이 드러난다. 또한 역설적으로 독자에게는 ‘창가의 여자’와 ‘기러기’에서 추출된 보편성에서 출발하여 자신이 체험하는 독특한 경험을 섬세하고 주체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 책에서 뽑은 말>

“갖고 싶다는 욕망과 그것을 사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하나가 되어, 가슴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희미하고 달콤한 어떤 애상적 정서가 생긴다. 여자는 그런 감정을 즐긴다. 그것과는 달리, 여자가 실제로 사려고 하는 물건은 그 여자에게 강렬한 고통을 안겨준다. 여자는 그 물건 때문에 안절부절못할 만큼 괴로워한다.
설령 며칠 기다리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경우라도 그것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여자는 더위나 추위, 그리고 어둠이나 눈비에도 아랑곳없이 충동적으로 그것을 사러 가는 경우가 많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여자도 특별히 이상해서가 아니다. 단지 갖고 싶은 물건과 살 수 있는 물건과의 경계가 희미해진 여자일 뿐이다. 오다마에게 오카다라는 존재는, 예전에는 단지 갖고 싶은 물건이었으나 지금은 순식간에 변하여 살 수 있는 물건이 된 것이다.”
-모리 오가이, 김영식 역, ‘기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