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killing)과 살해(murder)의 차이
살인(ἀναίρεσις, anairesis, killing) : ‘살인’이라는 이 어휘는 성경 사도행전 8장 1절에 나오는데 여기서는 사형(선고)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살인은 의도 없는 살인이나 과실치사, 공적 사형, 살해까지 모두 포함하는 말이나 대체로 살해만은 따로 표현한다.
살해(φονός=phonos, murder) :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자 의도적으로 하는 행위이며, 반드시 본인이 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살해를 요구하거나 청탁하거나 교사하는 행위까지 모두 포함한다. 살해는 중죄이다. 왜냐하면 생명(生命) 곧 ‘살아라’는 창조주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경 마태복음 5장 21절에 나오는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희랍어 원문에는 “Μη φονεύσεις·(메 포네우세이스)” 라고 되어 있다. 영어로는 NIV2011버전에는 “You shall not murder(살해하지 말지니라).”이다. KJV버전에서는 “Thou shalt not kill(살인하지 말라).”로 되어 있다. 한글 성경은 모두 “살인하지 말라.”고 번역해 놓았다. φονός(포노스)를 살인(killing)으로 번역했다고 하여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killing이라는 개념은 외연(extention)에서 볼 때 ‘murder’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고, 내용상 상의어(上意語)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려면 다음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타인의 생명을 해치려는 의도를 품고 살인했을 때, 타국을 침략하였을 때, 무엇을 빼앗으려고 흉기를 품고 갔다가 여의치 못해서 살인했을 때,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납치하여 살인했을 때는 모두 살해에 해당한다. 살해 행위는 현행법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범죄(crime)를 저지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살해 의도만 가졌을 때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죄(sin)를 지은 것으로 현행법으로 처벌이 어려우나 당연히 나쁜 죄를 저지른 것으로 본다. 살해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즉 타인의 존엄한 생명을 탈취하려고 마음먹은 순간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도 포기한 것으로 본다. 러시아의 푸틴 본인이 정작 타인을 직접 죽이지 않았더라도 살해범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자신의 부하들을 수 만 명 죽게 한 행위는 대단히 큰 중범죄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아웃랜더'의 이야기

넷플릭스 '아웃랜더'의 한 장면, pc 화면을 직접 촬영한 사본임.
어떤 연유로 인해 간호사인 새서내크라는 여인이 타임슬립하면서 18세기 과거의 스코틀랜드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는 온갖 위험과 어려움을 겪다가 용기 있는 남자 프레이저를 만나게 되어 결혼하며 산다. 현대 시대에 이미 그녀는 남편이 있고, 딸도 있다. 딸과 그녀를 사랑하는 성직자 집안 출신 남자 로저가 만나서 결혼하고 그녀 역시 어머니를 찾아 미래에서 18세기로 들어와서 함께 살게 된다. 새서내크가 여러 가지 약물을 사용하여 마을 사람들을 치료해 주기도 하면서 신망을 얻고 있었으며, 프레이저 역시 영국과 대치하는 스코틀랜드의 마을을 이끌어 가면서 신망을 얻고 있었다. 시즌 6에서 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새서내크의 문하생이었던 말바라는 처녀가 임신하게 된다. 그녀는 스승 새서내크를 존경하면서 따르고 있었고, 새서내크 역시 제자인 말바를 끔찍이 사랑하며 의술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녀가 임신한 사건은 종교와 도덕이 밀접하게 혼합되어 있는 엄격한 스코틀랜드 마을에서는 심각한 문제였다. 아버지가 말바를 추궁하자 그녀는 프레이저 앞에서만 말하겠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녀를 끌고 프레이저 집에 와서 프레이저와 그의 아내 새서내크, 그리고 사위와 딸 앞에서 선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가 프레이저라고 한다. 기가 막힐 이 엉터리 같은 사건에 새서내크는 경악하지만 진실한 사랑과 믿음으로 결합한 아내 새서내크는 프레이저를 믿는다. 특히 새서내크로서 볼 때 문하생을 지극히 아껴 주었는데 밀바의 이런 배신 행위는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런데 또한 큰 사건이 벌어진다. 말바가 새서내크를 찾아 온 것이다. 새서내크는 배신감에 그녀와 한 마디 말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만든 에테르(마취제)를 흡입하고 잠이 들었다. 새서내크는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서 정원의 풀을 베러 칼을 들고 나갔는데 거기에는 말바가 목에 칼을 찔려서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즉사한 것 같았다. 너무 경악스러웠지만 만삭의 뱃속을 본 새서내크는 그 상황에서도 아이를 살리고자 하였다. 새서내크는 임신한 말바의 배를 가지고 있던 칼로 가른 뒤 아이를 꺼낸다. 아이를 살리려고 코에 공기를 불어넣으면 열심히 마사지를 했으나 기어기 아기마저 죽는다. 마을 사람이 칼을 들고 있던 새서내크를 보게 되고 그녀는 변명하기 어려운 곤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프레이저 가족을 의심하는 정도를 넘어서 그녀가 말바의 입을 막으려고 말바와 아기를 잔인하게 죽였을 것이라 확신하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비어즐리 형제(쌍둥이)가 리지라는 처녀와 동시에 관계한 것이었다. 새서내크와 프레이저는, 리지로부터 비어즐리 형제를 좋아해서 번갈아 만나며 관계했다는 충격적인 말까지 듣는다. 심지어 리지는 두 형제와 함께 살고 싶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한다. 그러나 새서내크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 사건도 조카가 말바 사건으로 인해 혼전 임신한 여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을 보고 외삼촌 프레이저에게 알려주었다. 조카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규범을 통찰하고 있는 프레이저는 말한다. “둘 다 불러와야지. 둘 중 하나와 결혼하든지, 둘 다 죽든지.” 복잡한 심정으로 프레이저와 사위는 대화를 나눈다. 사위 로저는 마을에서 성경을 가르지고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나중에 케자이어 비어즐리가 선택되어 리지와 결혼한다.
프레이저 “비어즐리 형제 못 봤어?”
로저 “아니오, 왜요?”
프레이저 “됐어.”
로저 “샌드위치 먹기 싫었나 봐요. 배 안 고파요?”
“황당한 소리 같지만 미래에는 동물을 아예 안 먹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로저가 미래에서 온 사위이기 때문임.)
프레이저 “그래, 클레어(딸)한테 들었어. 채식주의자라며. 그 사람들처럼 되겠다는 거냐?”
--- (클레어는 18세기에 새서내크와 만나서 사랑한 후, 새서내크가 현대 사회로 복귀한 적이 있는데 현대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그녀를 클레어라고 하였고, 딸은 로저와 결혼하였다.)
로저 “아니에요.”
프레이저 “그런데 왜 그런 생각으로?”
로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우리 둘 다 아는데...”
프레이저 “사람 죽인 거?” “주님만이 자네를 심판하실 거다.”
로저 “그 브라운즈빌 남자한데 제가 한 짓은 말바에게 일어난 일과 같은 거 아닌가요?”
프레이저 “아니야.”
로저 “하지만, ‘살인하지(kill) 말지어다.”
프레이저 “그걸 인용해 봐야 좋을 거 없어.”
프레이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성서에선 ‘살해(murder)’라는 단어가 쓰였어.” “말바는 살해당했어.”
로저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신은 어디 있는지 궁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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