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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시리즈(1) 테스 형과 진실

빈자무적 2025. 3. 7. 10:10

소크라테스의 삶과 앎(1) - 테스 형과 진실

 

테스 형과 진실

 

요즈음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뜬다. 특히 고령의 인기가수 나훈아 씨가 스스로 작곡하고 작사한 신곡을 발표했는데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고 부르며 세상살이에 지친 삶을 하소연하고 있다. 그 가사를 잠시 음미해 본다.

테스 형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가수 나훈아, 작사, 작곡

가사를 음미해 보면 오늘날 삶의 경쟁 속에서 힘들고 지쳐 있는 우리에게 테스 형은 친근한 상담자(counselor)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상 예술에서는 노래하는 사람이나 시청자가 보는 소크라테스는 원래의 소크라테스와 많이 다르다. 또 정치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악법도 준수하는 복종적 국민의 표상으로 여기도록 계몽한 적도 있다. 이 외에도 그가 강조했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상대를 겸손할 것을 요구하거나 면박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위의 사례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적지 않은 오해를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현재의 소크라테스는 당대의 소크라테스적 소크라테스와 멀리 떨어져 있다.

사진출처 : Pixabay 로부터 입수된 Gordon Johnson

 

 

오늘날의 소크라테스는 유행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그의 이름만 남고 그의 내면의 진실한 생각이나 인생의 의미를 빼 먹기 쉬운 존재가 되어 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말도 와전되고 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정직하여 친구에게 대신 닭 한 마리를 빚진 것을 꼭 갚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다. 이 말도 플라톤이 전한 말의 대화편 속의 뜻과 많이 다르다. 그것은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바쳐 달라는 요청이었는데, 소크라테스가 영혼의 순전함을 믿는 자로서 그가 독배를 마시고 죽음으로써 이 세상의 육체가 지닌 모든 병을 치유해 주는 아스클레피오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소크라테스를 묘사하기는 쉽지 않다. 베르너 예거는 ‘소크라테스는 상징이 되어 버린 불후의 인물이고 근대의 계몽과 철학의 지도자이며, 어떤 교리나 전통에도 얽매이지 않고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입각하여 오직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도덕적 자유의 사도’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가 없었다면 서양 정신사에서 어떤 윤리, 사상, 철학과 같은 정신적 운동을 일으킬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헤아릴 길 없는 인물이며, 사람들이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영역에까지 이르러 있다.”고 하였다. 오늘의 두 시간짜리 강좌에서 ‘헤아릴 길 없는’ 소크라테스를 깊이 있게 탐구할 시간은 거의 없으나 소크라테스의 삶의 역정과 그의 생각을 잠시 들여다봄으로써 소크라테스로서 소크라테스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소크라테스(470BC.~399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