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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고전산책> 인생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빈자무적 2025. 3. 7. 09:43

인생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류우현

 

한 때 서양에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존 롤즈와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매킨타이어 덕윤리학과 같은 가치와 사상에 관한 탐구 열풍이 일었던 적이 있다. 이 학자들의 사상은 우리들의 삶의 방향과 태도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것들이다. 이 사상가들에게 귀중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온 2천여 년 전의 책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바로 그것을 소개하려고 한다. 원래 유명한 고전이란 그 이름이 잘 알려진 것과 달리 의외로 가장 읽히지 않는 책들이다. 그러나 그 고전은 우리 삶과 가치 판단에 어떻게든 작용하고 있기에 소중한 것들이다. 다소 난해한 책이지만 나는 과감하게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철학서 한 권,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나온 사상을 요약한 것이 아니므로 원본 독파를 권유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 전 384년 마케도니아의 왕궁 도시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실의 의사였는데, 니코마코스의 손자,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이름도 니코마코스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사후에 아테네에 ‘아카데메이아.Academeia’라는 학당을 개설하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부터 플라톤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플라톤의 이 학당에서는 철학을 비롯해 수학, 천문학, 음악 등의 학문을 중요하게 여겼다. 20년 간 아카데메이아에서 학문에 정진하던 그가 학당을 떠났는데 플라톤이 섭섭하게 여겼는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를 차버리고 말았다. 마치 망아지가 낳은 어미를 그렇게 하듯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날 학문의 전당을 일컫는 아카데미.Academy는 플라톤 학당에서 유래한 말이다.

 

다른 설(說)도 있다. 헤르미포스에 의하면 필립 왕의 사절로 가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학당의 수석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돌아와서 자리를 찾지 못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회랑.Peripatos을 오가며 사람들과 철학을 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따르던 학파를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 불렀다. 또 기원 전 347년 플라톤이 죽고 그의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새로운 학원장이 되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를 떠나 아소스에 아카데메이아 분교를 열고 스승과 다른 독자적인 철학을 펼쳤다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43년에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Philipos의 요청으로 아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의 스승이 되어 그를 가르쳤다.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 정복을 꿈꾸자 그는 마케도니아를 떠나 아테네에 뤼케이온.Lycheion이란 학당을 개설했다. 프랑스 중등학교를 일컫는 리세.Lycée는 바로 이 뤼케이온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이창우, 김재홍, 강상진 옮김, 이제이북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류사에 미친 업적은 플라톤 못지않다. 플라톤이 제시한,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visible world이고, 다른 하나는 오로지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계.invisible world, idea이다. 플라톤은 감각적 경험의 세계는 가짜이고, 참된 세계는 이데아의 세계라고 하였다. 이와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참된 존재의 본질인 우시아.ousia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세계에 존재한다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앎과 행함의 관계를 주지주의(主知主義) 관점에서 보고, 참으로 알면 행하게 된다고 본 데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으로 안다고 해도 의지의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참된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소피스트의 수사술(修辭術)을 논리성과 윤리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격렬히 비판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술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수사학(修辭學)으로 발전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분야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그는 내용의 학문에서는 물리학과 정치학이 있고, 방법의 학문에서는 변증법(논리학)이 있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분류는 지식의 분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이론지.apodeiksis, 실천지.phronesis, 제작지.thechnē 세 가지로 분류하고 저술하였다. 이론지에는 형이상학, 철학, 수학, 자연학 등을 포함한다. 실천지에는 정치학, 니코마케아 윤리학,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들어 있다. 제작지에는 수사학과 시학이 있다. 이외에 특별히 오르가논.organon(분석론)이 있는데 이는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는 학문으로서 요즘 말로 논리학.logics과 논술에 관한 책이다. 오르가논은 정의와 명제, 삼단논법, 논증, 논박, 오류론 등이 대단히 중요한 학문의 기초로 여겨져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근대 이후 임마누엘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칸트는『도덕형이상학 기초놓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자연학(물리학), 윤리학, 논리학은 주제의 본성에 완벽하게 맞으며, 더 개선할 점이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또한 생물학 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탁월한 업적을 남겼으며, 이외에도 그의 저작들은 분량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방대하다. 어쩌면 그의 동료와 제자들의 노력이 보태어진 것일 수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그리스 철학자 열전』에 등록된 저술 목록만 살펴보아도 무려 390권이 넘으며 행으로 따지면 44만 5,720줄에 이른다. 하지만 여러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발견되지 않은 저작을 포함하여 실제로 무려 660권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전 세계에 족적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은 아랍계 스콜라 철학자인 아베로에스.Averroes(이븐 루시드)의 공로가 컸다. 그는 무슬림 지배 하의 알 안달루스에서 의학, 신학, 철학, 어학에 뛰어난 학자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뛰어난 주해자(註解者)였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전파한 사람이었다. 아베로에스는 단테의 『신곡(지옥편)』에서 뛰어난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로 등장하며, 이슬람 사상가로는 라파엘로의 천장화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한편 교부철학에서 스콜라철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이단성 논쟁으로 매우 시끄러웠고, 이 다툼의 환경을 소재로 수도원의 살인 사건을 다룬 소설이 유명한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이제까지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된 사회ㆍ역사적 맥락과 업적들을 살펴보았다.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최고선(最高善)’이다. 최고선이란 바로 ‘행복.eudaimonia’이란 개념으로 표현된다. 고대 그리스 어에서 접두사 eu-는 ‘좋음(good)’을 뜻한다. 다이모니아는 다이몬 신을 뜻한다. 다이몬이란 말에서 ‘신적인 것은 최상, 최선, 곧 최고선을 뜻하는 것’임을 함의하고 있다. 최고선은 모든 도덕과 윤리가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행복이 최고선이 될 수 있는 근거는 궁극적 목적인가에 있다. 예컨대 어떤 학생이 공부는 왜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대학진학을 위해서 한다고 대답한다. 그럼 대학엘 왜 가려는 거지? 라고 물으면 그는 나중에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또 취직은 왜 하려는 거지? 라고 물으면 돈 벌어서 집도 마련하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잘 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그것은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부의 여러 목적들인 진학, 취직, 축재, 주택 구입, 결혼, 자녀 양육이 열거된다. 이것들은 목적인 동시에 다른 어떤 것들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행복’은 다른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최고선은 다른 어떤 것들의 수단이 되지 않는 것 궁극적인 것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들의 수단이 되지 않는 그 자체로서 목적인 최고선이라고 하였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언급되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최종 관심은 ‘어떻게 하면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는가?’이며, 이 질문의 바탕에는 ‘인간에게 최고선은 무엇인가?’가 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여기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며, 그것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의 물음에 대한 논의와 탐구가 이 책에 실려 있다.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므로 다른 어떤 것들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추구하던 많은 것들, 곧 즐거움과 유익한 것들은 자체로서 행복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그리스 사회에서 통속적으로 생각해 왔던 돈, 권력, 명예, 힘, 건강, 쾌락, 덕 등이 행복이라는 생각과, 그러한 것들을 쟁취하고 유지하려고 했던 많은 노력들이 오류를 안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는 좋은 품성이나 심지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상태(품성 상태)마저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 관한 좋은 질문이 있다. “인간은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의식하고 있지 않은(이성에 의해 궁극적 목적을 자각하지 않은 비활동적인) 상태라면 그것은 행복이 아닐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아레테.arete를 강조한다. 아레테는 덕, 또는 탁월성으로 번역되지만 고대 그리스 인들이 생각하는 아레테는 도덕적 덕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그 의미가 훨씬 더 넓다. 아레테 ‘잘 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arete는 ‘art’ 곧, 기술, 예술을 말하는 것으로 영혼의 기능을 잘 발휘하는 탁월함, 뛰어남을 뜻한다. 덕(품성) 자체는 행복이 아니지만 그것을 발휘하는 활동성은 행복에 도달하는 중요한 길이다. 덕, 또는 품성은 지적이고 실천적이며 지속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는 탁월함을 발휘하는 것은 중용의 덕을 습관화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다. 중용은 ‘최적인 상태’를 뜻한다. 그는 중용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고도 세밀하게 논술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중용’은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는 상태, 곧 적절한 때에 적절한 분량으로 적절한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용기는 모자람(비겁)과 넘침(만용) 사이의 적절함이다. 그는, 중용의 덕이나 행복은 ‘제비 한 마리가 날아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이 아닌 것처럼’ 단 번에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이 책을 소개하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전체적인 내용들을 좁은 지면에 모두 소화하여 담기가 매우 어려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덕성의 개념에 대해 다양하면서도 심도 있는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의 도덕적 개념들을 일일이 검토하면 좋겠으나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다만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윤리학의 큰 두 개의 강물인 의무론과 목적론 중에서 목적론의 기원이 된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2천여 년 전에 쓰인 책이 가진 역사적, 사회적, 윤리적, 정치적 의미가 현대적 삶에 비중 있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독자도 읽고 탐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오늘날 쾌락주의나 웰빙(well-being, 잘 삶)으로 일컬어지는 행복의 관점을 덕윤리학(德倫理學)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또는 그 반대편에 서서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덕의 길을 걸어 행복에 이른다.’라고 표현하면 될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2,300여 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를 소환하게 하는 프랑스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기출문제를 소개한다. 이걸 풀어내야 하는 학생들이 프랑스의 대학입학자격 수험생(고등학생)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면 좋겠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1998년 Baccalauréat 문제 중에서

 

<참고한 책들>

 

아리스토텔레스(이창우 외 2인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 이제이북스 (주 텍스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전양범 역), 『그리스 철학자 열전』, 동서문화사

플라톤(박종현 역), 『국가』, 서광사

플라톤(김인곤 역), 『고르기아스』, 정암학당

아리스토텔레스(이종오,김용석 역), 『수사학』, 리젬

아리스토텔레스(김재홍 역), 『소피스트적 논박』, 한길사

임마누엘 칸트(이원봉 역), 『도덕형이상학 기초놓기』, 책세상

움베르토 에코(이윤기 역),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최병권・이정옥,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종합편), Humanist

장 마리 장브(김임구), 『학문의 정신 아리스토텔레스』, 한길사

단테 알리기에리(김운찬), 『신곡(지옥편)』, 열린책들

박병기 외, 『고등학교 고전과 윤리』, 전라북도교육청

박성창, 『수사학』, 문학과지성사

이양수, 『롤스와 매킨타이어, 정의로운 삶의 조건』, 김영사

김필영, 『평범하게 비범한 철학에세이』, 스마트북스